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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발병

어읽로꾸거 2020. 5. 21. 10:47

- 직접 타이핑을 하지 않고 음성 인식을 통해 작성된 글 입니다. 엉뚱한 단어가 있을 수 있으니 맥락에 맞게 이해해 주세요.

 

 나는 5월 5일부로 정식 이발병이 되었다. 우리 부대는 너무 작은 부대여서 전문적인 보직병(BX, 오버로크, 이발)이 따로 없다. 다 각자의 특기대로 일도 하면서 일종의 겸직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밖에서 해당 일을 해본 사람이 있겠지만,(실제로 있다. 미대 디자인학과를 다녀서 그런지 재봉틀을 20살 초반 남자 치고는 엄청 잘 다룬다.) 대부분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해당 보직을 하는가? 휴가를 모을 수 있는 가점을 주기 때문이다. 이 점이 좋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보지 않은 일이여도 기꺼이 하려고한다. 물론 나도 이발을 당연히 해본 적이 없다. 기껏 해야 전기 면도기로 내 옆 구렛나루나 슬슬 긁거나, 지금 생각이 났는데 고등학생때 학교에서 두발 검사를 한다고 해서 부랴 부랴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내 머리 숯을 친게 다다.(결과는 쥐 파먹은듯이 머리가 울퉁불퉁 해졌고, 검사할때 걸려서 벌점먹었다.) 그리고 평소에 꾸미는거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내가 머리를 자르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사실 생각치도 못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나 주변 사람들은 뜬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다는건, 역시 휴가가 그만큼 좋다는거다.

 

 머리는 다들 생각대로 외모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잘 유지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첫 상번한 이발병은 힘든점이 있다. "머리를 한번도 안 잘라본 사람한테 머리자를 사람?" 나 같아도 안자른다. 이게 문제다. 첫 상번한 이발병에게는 아무도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의외는 있다. 사실은 그럴 줄 알고 초반에 머리를 어떻게 하면 많이 잘할 수 있을까를 상번 하기 전부터 고민했다. 그러다 하나 생각해 낸 건 비슷한 시기에 나보다 먼저 이발병을 상번한 동기에게 서로 머리를 잘라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나한테 순순히 머리를 자르겠다고 한 동기가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처음으로 잘라 줬다. 실수는 있었지만 나름 잘 잘랐다고 생각했다.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게 훅훅 자리니까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하튼 이렇게 한 명을 일단 잘랐다고 생각하니 처음보단 좀 자신이 생겼다.

 

 이때쯤에 부대 높은 영관급 장교들이 온다는 계획이 잡혔다. 거기다가 신병이 한 명 두 명씩 계속 전입을 오고 있었다. 이때를 노려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랐다. 내가 머리를 다른 사람들은 선임 후임 신병으로 3분류가 있었다. 먼저 훈련소에서 자른 짧은머리로 가장 난이도가 쉽고 실패해도 뒷감당이 없는(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다. 하지만 군대는 군대다) 신병들을 대상으로 잘랐다. 개중에는 우리 부서로 오는 후임도 한 명 있었다. 훈련소에서 자른 머리 다 보니까 모든 부분의 머리길이가 똑같다. 옆 뒷머리만 확실하게 자르면 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지만 조금 다른 점은 윗머리 숱이 많지 않아서 옆머리나 뒷머리를 자를 때 윗머리를 건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이 그렇다. 7명의 신병의 머리를 잘랐다. 대부분 신병이란 나름 긴장한 티를 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집이 어디니? 특기가 뭐니? 취미가 뭐니? 학교는? 전공이 뭐야? 몇 년생인지? 여기 사람들 어때? 훈련소에서 재밌는썰 있었니? 등 어느 기수든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다가 조교에게 걸린 사람은 있었나 보다. 머리는 대부분 쉬운 난이도에 걸맞게 잘 잘랐다. 하지만 옆머리에 작은 스크래치를 내는 작은 수준의 실수들은 처음 두 명에게 했다. 미안해 얘들아. 이걸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다음은 그냥 후임. 이 분류를 제일 많이 잘랐다. 대부분은 머리가 짧은 편이 아니다. 난이도가 쉬운 편도 아니고 실패해도 크게 뒷감당 없지만 그래도 머리를 잘못 잘한다는 소문이 나 인식이 생기면 좀 곤란하다. 그래도 이쯤 되면 슬슬 자신감을 갖는다. 나름 많이 잘났다는 생각이 나면서도 다른 선임 이발병이 자른 사람의 머리를 보면 상당하게 깔끔이 잘린 그런 머리를 보고 감탄하며 실력의 차이를 체감하는 그런 때가 있다. 뭐 그런 수준이다. 후임들은 대부분 머리에 각자의 머리 형태와 스타일이 있다. 그 중 가장 쉬운 머리는 당연히 직모다. 정말 머리가 빳빳해서 내 바리깡이 길 가는 대로 다 깔끔하게 자르고 간다. 이런 머리는 자르다 보면 내 손이나 팔 어딘가에 바늘처럼 박혀 있어서 따갑다. 반대로 가장 어려운 머리는 흐물흐물 하고 힘없는 곱슬머리다. 빗을 대고 세워도 나온 부분이 축 처져 있으면 바리깡이 지나가도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잘 잘리지 않고 지나간다. 어쩔 수 없이 가위를 쓰게 된다. 가위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쉽지 않다. 이 부분에서도 조금 실수가 있었다. 숱을 너무 많이 친다던가 앞머리를 너무 많이 자르던가. 이 모든 실수는 한 사람한테 일어났는데 내 동기였다. 처음에는이 친구가 내가 너무 머리를 많이 잘났다면 화를 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며 한 이틀 정도 우울해 있었다 나도 이 친구를 보면 너무 미안했다. 머리를 조심히 잘 잘라겠다고 다짐한 시간이었다. 또 성형외과 의사들은 진짜 수술 잘못하면 엄청 원망 들으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돈을 잘 버는 줄 알 것 같다. 그 친구는 이틀 지나니까 다시 기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친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내 생각에는 잘 자른 편이었다. 개 중에 한 명은 내가 머리를 이렇게 자를 줄 몰랐다고 해서 당황해 물어보니까 상번한지 얼마 안 된 거 치고 너무 잘 잘랐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분류는 선임인데 머리가 대체로 긴 편이다. 난이도도 어렵고 실패하면 뒷감당이 크다. 그리고 비교적 얼마 안 된 나한테 머리를 자르러 오는 선임은 많지 않았다. 이미 머리를 자르는 잘 자르는 선임 이발병이 있으니까 뭐 나한테 오지 않는다. 머리에 신경 안 쓴다는 사람들은 와서 잘랐지만 그래도 과연 신경을 안 쓸까 ^^ ? 어느 정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처음엔 거절할까 생각하다가 언제까지 거절만 해서는 실력이 안 늘 것 같으니까 정말 정말 집중해서 잘랐다. 집중이 통한건지 실수를 하나도 안 했다. 잘 자른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지금 5월 20일까지 총 27명을 잘랐다. 가점 15점 당 휴가 1일. 한 명 머리자르는데 0.5점. 30명을 자르면 휴가 1일이다. 한달이 안 돼서 거의 휴가 하루를 벌었다. 가점도 가점이지만, 그걸 벗어나서 나는 머리를 자르는 새로운 경험을해보는 부분과 누군가의 머리를 자르면서 뭔가 만들어낸 그 결과물이 좋다. 그리고 머리가 마음에 들면 더 좋다 그런 부분이 머리를 자르는데 있어서 약간의 중독이 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재미가 있다. 고등학생 때 같은 반 있던 친구가 자기는 미용사가 되길 바란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속으로 미용사? 미용사는 대부분 자영업을 하니까 돈 벌기 힘들지 않을까? 왜 다른 좋은 직업 놔두고 미용사? 라는 단순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너무 나의 기준에서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코딩을 통해서 무언가 실행되고 돌아가는 걸 보면 즐거워 하듯이 그 친구도 미용을 하면서 머리를 꾸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즐겼던 것이다. 근데 잠깐 지금 또 생각을 해 보니까 이건 경험을 통해 바뀐 내 기준으로 생각한 것 밖에 안 된다.

 

 여기서 생각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내 기준(대부분 이럴 것이다)은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 진다. 그래서 경험을 넓혀서 나의 기준을 점점 더 정확하게 만들어간다. 두 번째, 위에서 말한대로 아무리 경험을 넓혀 본들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할 수 없으므로 내 기준은 항상 부정확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 기준을 믿지말아야 하고 또 그러려면 무엇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살면서 무엇도 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살 수는 없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아 가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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